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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수정해나가는 식으로 소설은 이어진다.

 『신발은 걷고 싶다』

 

김민구 作 

 1  

 백사장의 흰 모래알은 도시에 두고 온 수많은 추억들처럼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이라고 하지만 내 앞에서 여전히 붉은 태양은 이글거리는 화염을 등에 짊어진 채 수평선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 저 끝에서는 어느 이름 모를 바다새가 천천히 수면으로 선회하여 가련한 치어 한 마리를 냉큼 채갈 것이고 수천 미터의 심해에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수백 개의 어종들이 제 생애 일출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할 것이다. 넘어가지 말라고 일부러 해양 경찰청이 팻말까지 세워놓았으나 나는 그 경계선을 넘어 방파제 끝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내 등을 살짝 밀면 그대로 깊은 바닷속으로 추락할 정도의 아슬아슬한 곳, 내 앞에서 태양은 마침내 제 붉은 몸을 완연히 드러내보였다. 바다는 식지 않은 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파도는 물결칠 것이고 어딘가에 박혀있는 암초는 수천 년의 시간동안 조금씩 제 몸이 깎여 언젠가는 매끄럽게 변할 것이다. 나는 신발을 벗었다. 끈의 한 쪽이 잘려나가 다른 한 쪽으로만 어설프게 매야 하는 신발이었다. 신을 때도 불편했고 벗을 때도 불편했다. 꽉 조여 놓으면 금세 풀어져 슬리퍼처럼 질질 땅에 끌려다녔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맨발이었다. 슬리퍼 같은 신발을 신는데 꼭 양말을 신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백사장을 거닐 때 어느 틈엔가 신발 속으로 들어온 모래들이 서걱거렸다. 맨발을 들어 방파제에 대고 문지르자 모래알갱이들이 떨어졌다. 그들의 위치는 나보다 더더욱 아슬아슬해 보였다. 엄지발가락 끝으로 살짝 모래알을 밀어내자 까마득한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맨발로 차가운 방파제를 딛고 서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치 태양이 나를 위해 바다에서 떠오른 듯 보였기 때문이다. 발은, 아침에 이렇게 바다바람을 쐬어 숨을 쉬도록 해주어야 한다. 좁은 신발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껏 호흡할 수 있도록, 풀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ㅡ 더 나아가시면 큰일납니다! 배를 돌려야 해요! 우린 지금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거예요!

 내가 탄 어선은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파도가 뱃전보다 높이 치솟아 나와 어부들을 때렸다. 입술에서 짠 바닷물이 흘러내리고 나는 서둘러 바가지를 들어 물을 퍼냈다. 한 바가지의 물을 퍼내면 한 포대의 물이 도로 들어왔다. 선장은 키를 돌렸고 어선은 우현으로 뱃전이 기울어졌다. 파도가 왼쪽을 때리자 거센 물살이 내쪽으로 밀려왔다. 바지가 다 젖고 슬리퍼처럼 질질 끌려다니던 신발도 홀딱 젖었다. 신발 안쪽의 깔판이 물에 젖어 걸레가 된 듯 발바닥이 물컹거렸다. 수염을 턱 밑에만 기른 어부 두 명이 그물을 말아올렸고 다른 어부들은 나를 도와 물을 퍼냈다. 본래 어선에는 물이 갑판으로 들어왔을 때 다시 밖으로 배출시키는 하수구 비슷한 구획이 있었으나 이미 가득 차버린 듯 물을 줄이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어선 안에 바다가 들어와 있었다. 좁은 갑판은 작은 바다였다. 다만 수심이 얕고 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 달랐을 뿐, 그물에서 빠져나온 치어 몇 마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이미 열 마리가 넘게 도로 물밖으로 달아났다.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 했지만 갑판에 물이 들어온 이상 그들은 글자 그대로 '물 만난 고기'였다. 손에 닿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갑판 바닥으로 도망치더니 이내 옆으로 뛰어들었다. 다 잡은 고기를 도로 어망에 넣는 것보다 물을 퍼내는 것이 중요했다. 배는 파도를 뒤로하는 데에 성공했다. 바람을 타고 이 작은 어선은 파도의 범위권을 벗어났다. 배 안의 바다가 점점 그 수위를 줄여갔다. 아까 그물을 말아올리던 어부들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빈 어망을 바닥에 내던지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젖은 담배엔 불이 붙지 않았다. 라이터도 기름이 다 되었는지 긴 불꽃을 솟구치지 아니했다. 담배를 물고 있던 사내가 라이터를 바다로 던져버렸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닦아냈다. 사진은 찍은 것이 없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싶었다. 내 신발은 갑판을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내가 그물을 말아올리지 않았으니 나의 체중을 버티지도 않았다. 그저 짠 바닷물이나 양껏 퍼마셨을 뿐인 것이다. 선장이 내게 사과했다. 이 수역에서는 이렇게 파도가 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오늘은 왜 그런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ㅡ 원랜 파도가 안 쳐요?

 ㅡ 안 치죠. 잔잔한 물결이 계속되니 이곳은 옛날부터 선비들이 뱃놀이를 하던 곳이었습죠. 헌데 오늘은…. 

 항구에 도착해서야 나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갈매기 몇 마리가 마스트 위에 올라앉았다. 항구에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차가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시원했다. 목덜미에 와 닿는 빗줄기는 시원하고 간지러웠다. 선장이 낡은 우산을 받쳐 들고 나를 뭍으로 인도했다. 근처 횟집으로 들어가 가만히 어항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차올라도 저 어항은 굳건히 제 모습을 유지하며 금간 곳 하나 없이 당당한데, 어항보단 훨씬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갔을 어선은 풍랑에 거의 뒤집힐 뻔 했다. 간단한 것이 복잡한 것 보다 못한 것인가. 선장이 내게 활어회 한 접시를 건넸다.

 ㅡ 아쉬우시겠습니다. 모처럼 들른 바다였을텐데.

 ㅡ 뭐 다시 오면 되지요. 항구는 조용한데 거참, 이렇게 다르군요.

 ㅡ 사실 그쪽 뿐 아니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조화가 뒤바뀌는 게 바다예요. 바다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선원들도 매일 조심하죠. 더 걱정되는 건 어획량이 많이 줄었어요. 아까 그곳이 어종이 제일 풍부한 곳인데.

 맨발은 몹시 차가웠다가 뜨거운 구들장 위에서 다시 더워졌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면 다시 진흙탕 위에 선 것처럼 축축해질 것이다. 나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갯벌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가끔 식당에 몰래 들어와 신발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던데, 과연 누가 진흙탕을 신고 싶어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신발 속에서 가재라도 한 마리 나오면 어쩌나. 그 불쌍한 신발도둑은 백주대낮에 아악 하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실없이 웃는 나를 보며 선장이 의아해했다. 그의 소주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ㅡ 소주가 바다라는 생각 해봤습니까?

 ㅡ 톡 쏘는 맛이 바다라고요? 헛허, 재밌는 상상이십니다.

 ㅡ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건 똑같지 않습니까. 핫하하

 ㅡ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바다가 원수는 아녜요. 원수라기보단 밥줄이죠. 그래서 더 달라붙는 건지도 모릅니다.

 ㅡ 또 소주와 비슷하네요.

 ㅡ 소주든 맥주든 동동주든 간에, 빠지긴 싫어요. 근데 김 선생 신발이...

 나는 고개를 돌려 신발장을 바라보았다. 한 칸 두 칸... 닳고 닳은 신발은 멀쩡히 신발장 위에 놓여있었다. 신발을 정리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내 신발은 왼쪽 구석에 따로 놓아두었는지 외롭게 놓여있는 것이었다. 흡사 겉모습이 걸레 같아서 누구라도 보면 곧 치워버릴 것 같았다. 항구에 오면서 안에 끼인 진흙들은 물로 씻어냈지만 워낙에 낡은 신발인지라 보기엔 변화가 없었다. 깨끗한 것이 더러워져 씻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만 원래 더러웠던 것은 뭘 해도 더러워지는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진흙이 좀 묻어있었더라면 다른 신발과 같은 곳에 놓일 수 있었으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ㅡ 선생 그 신발, 좀 바꾸시지요.

 ㅡ 왜요. 아직 더 쓸 수 있는데요.

 ㅡ 운동화가 슬리퍼가 된 것 같아서 말하는 겁니다. 고명하신 분이 신발을 질질 끌고다니는 걸 보니까 꼭 양아치 같습니다. 요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배 태워달라고 쫓아옵니다, 그려. 다 뒷조사를 해보면 학교에서 논다는 놈들예요.

 ㅡ 태워서 쓴 맛을 보여주지 그래요.

 ㅡ 마음 같아서야 쓴 맛 짠 맛 다 보여준 다음에 그냥 물에 빠뜨려버리고 돌아오면 좋겠는데, 그게 또 제대로 되나요.

 ㅡ 뱃사람은 함부로 되는 게 아니지요. 파도를 뚫고 건넌다고 배가 되는 게 아니듯 말입니다.

Posted by 시간의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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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8/12/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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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이버를 배신할 수 없단다

간혹 놀러오마

                            
Posted by 시간의 복도